Sub 선정 한국 대중음반 100대 명반 (1998) by 신랑각씨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한국 대중음악 평론사에서

국내의 대중음악 음반들의 가치를 설문하여

외국처럼 20세기 100대 명반 이런 것을 한 발표한 예는

98년의 서브가 처음이었습니다.




국내의 모든 평론가들이

가치를 측량할 수 없는 대상인 음악성을 순위매긴다는 것에 대해

확고한 반대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98년도에야 비로서 첫 시도가 이루어졌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브의 이런 시도는 저에게 너무나 고맙고 신선한 하나의 이벤트였죠.

(무슨 음반이 빠졌고 몇등이고는 그 다음 문제)




세상의 모든 음반을 (설사 어둠의 경로를 통한다 할 지라도) 다 들어볼 수는 없기에

100대 명반이니 10 Greatest xxx 등의 요딴 잘 정리된 리스트를 상당히 즐기는 편인데요.

더군다나 관심은 있는데 생소한 분야를 접해보고자 할때는

구매가이드로서 썩 훌륭한 역할을 해줍니다.




Sub의 이 리스트 덕에 건져올린

내 귀를 마비시킨 몇장의 명반을 생각하면

기획자 박준흠님에게 고마움이라도 표해야 할 지경입니다.





** Sub 선정 한국 대중음반 100대 명반은

대중음악 잡지 Sub에서 다수의 대중음악 전문가들에게

설문을 의뢰하여 선정된 것으로 98년 12월에 발표되었습니다.

< 음반 선정 방법 >
1. 먼저 선정 위원들에게 100매 이내의 음반 선정을 위촉하였다.
2. 시대/장르는 불문하고, 한 뮤지션에 대해서 복수로 음반 선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3. 반드시 음반 선정시 순위를 매겨달라고 하였다.

< 순위 집계 방법 >
1. 21명에게서 가장 많이 선정된 음반에 먼저 순위를 매겼다.
2. 선정된 음반 횟수가 같으면 개인 순위의 합이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높게 순위를 매겼다.
3. 다음 '100대 명반' 순위 옆의 ( )안의 숫자는 선정 위원들에게 지목 받은 횟수를 의미한다. 전체 1위인 들국화 1집의 경우는 선정위원 전부에게서 선정이 되었다.

< 선정 위원(가나다 순임/총 21명 >
고희정(서울스튜디오 마스터링엔지니어), 곽택근(신나라 레코드 영업부대리) ,김기정(펌프), 김민규(서브기자), 김영대(나우누리 뮤즈), 김종휘(팬진공편집인, 인디음반 제작실장), 류상기(다음기획 제작/기획부장), 박민희(한겨레신문 문화부기자), 박상완(기독교방송 PD), 박준흠(서브 편집장), 신승렬(나우누리 뮤즈),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유현숙(논픽션작가), 이창기(나무를 사랑하는사람들), 조경서(경기방송 PD), 조성희(서브기자), 조원희(카사브랑카,슈거케인), 진용주(우리교육기자), 최순식(하나뮤직 기획/홍보실장), 한유선(자유기고자), 황정(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



1. 들국화 1집 (1985/서라벌레코드) (21) [전인권(v,g), 최성원(v, g, b, key), 조덕환(g, v), 허성욱(key)]
결코 짧지 않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한 장의 음반만을 고르라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현실보다 과대포장되어 온 것이 과거이고 보면 그러한 거품을 걷어내고 결과물 자체를 냉정하게 응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0년대 경제적 여유 속에 도사리고 있던 교묘한 통제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저항하던당시의 젊은이들에 대한 회상이 단지 통기타, 청바지 그리고 생맥주로 그쳐진다면, 그리고 80년대라는 시간의 개념을 넘어 의미를 갖는 명제가 한낮 운동권의 회상으로만 그친다면 그 시기 모습을 드러낸 4명의 젊은이들의 이 역사적인 첫 발디딤은 추억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4가지 독자적인 아이덴디티의 조합으로부터 파생된 들국화라는 록밴드가, 그리고 그들이 내지른 첫 번째 외침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대중음악에 있어서 적지 않은 것이었다.
호황 뒤로 얼굴을 숨긴 제도권의 입김으로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한 채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던 가요계의 자신의 틀에만 안주하고자 하는 록과 모던 포크 등 대학 중심의 음악들이 위와 밑으로 나뉘어 더 이상 공유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들국화가 던진 정사각형의 출사표는 긴 동면에 접어든 듯한 대중음악을 깨우게 된다.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각자의 역량이 충분한 4명의 싱어 송 라이터들이 '음악이란 현장에서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 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명제를 이 땅의 음악인들과 청중들의 뇌리 속에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의 전인권의 절규와 <매일 그대와>에서 보여준 최성원의 감성 어린 목소리, 허성욱의 절제된 건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서 나타난 조덕환의 곡 쓰기 그리고 최구희, 주찬권, 이원재 등 당시 최고의 세션맨 등 이 모든 것들은 얼마나 이 음반이 철저한 싱어 송 라이터의 감각과 역량으로 라이브를 위한 라이브의 감성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가늠케 해준다.
이로써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밴드'라는 단위의 구성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비로서 진정한 의미의 음악인들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들국화는 1집 이후 실망스러운 후속 작들과 잦은 멤버교체 등으로 호흡을 길게 갖지 못한 채 신화로 남게 되었고 대중음악사에서 이러한 시도들은 답보의 상태를 맞게 된다.
그 이후 철저한 상업논리에 의한 인기곡의 생산과 재생산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었고 '노래 만들고 노래 하는' 밴드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별칭하에 지하로 가라앉게 된다. '만일 들국화가 데뷔 앨범과 같은 에너지로 그 생명력을 키웠더라면 대중음악은 다양성과 독자성의 자양분을 충분히 흡수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갖고 표절과 시스템화되어 버린, 일방적인 한 장르의 득세로 다양성과 함께 그 항체를 잃고 점점 고사해가는 듯한 현 가요계를 바라볼 때 13년 전에 뿌린 이 씨앗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은 더할 뿐이다.
아직 소멸하지 않은 13년 전의 그 씨앗들은 매스미디어와 자본에 지배되는 대중음악계의 변방에 자리하며 마로니에와 신촌, 홍대 근처의 지하에서 다시 제2의 들국화로 피어나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즉, 이들이 바라는 바와 같이 자신의 색깔을 간직한 채 세상에 당당히 평가 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들국화가 13년 전에 보여주었던, 대중음악사에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가능성이다. (황정)



2. 산울림 1집 (1977/서라벌레코드) (16) [김창완(g, v), 김창훈(b, v), 김창익(d)]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등 모든 면에서 진정 '뛰어나다'라는 감정서를 붙여도 손색이 없는 시대의 명작이다. 당시에는 들을수 없었던 최신 조류의 팝/록을 음악들이 가요에 접목되어 선보여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뛰어난 음반이다.
이 앨범이 다른 록 명반들과 그 의미를 달리하는 것은 지극히 '음악적'인 면에서 훌륭했다는 점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사회참여적이지도 않았고, 가사에 과장된 시적 은유를 표현하려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음악에 과장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더더군다나 하지 않았다. 이들 형제들은 솔직하지만 간결하고 아름다운 노래말로 자신들의 순수한 음악적 열정을 가사로 표현하는 동시에 새로운 장르에 대한 탐구와 실험에 입각한 수준 높은 연주력을 한 장의 음반에 담아냈다.
이들에 대한 재평가가 늦어진 것은 그들의 음악에 숨겨진 음악적 역량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유치한 듯한 노래말에 숨겨진 독특한 코드 전개와 연주 스타일은 언뜻 지나치기 쉽지만 분명 음악적으로는 높게 평가될 만한 것이었다. 선구자적인 측면으로나 음악적인 천재성으로나, 이를 능가하는 다른 앨범을 찾기 힘든 명반 중의 명반이다. (김영대)



3. 어떤날 1960~1965 (1986/서울음반) (15) [조동익(b, key, pcc, v), 이병우(g, pcc, v)]
어떤날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전대미문의 듀오였다. 소박한 감수성으로 록과 포크 그리고 퓨전 재즈를 지향했던 그들은 번뜩이는 자신들의 천재적 재능을 과시하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데뷔 음반을 완성했다.
음악적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동익의 형이자 70년대 모던 포크의 독자적인 지류였던 조동진과 80년대 전문 세션을 개척한 포크 록 그룹 따로 또 같이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2집에서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팻 메시니의 영향이 드러난다), 같은 해에 실질적인 데뷔 음반을 발표한 시인과 촌장과 같이 완벽한 자신들의 스타일을 형성한 뮤지션들이다.
데뷔 전해인 1985년에 진정한 의미의 신인발굴 컴필레이션 음반인 <우리노래 전시회1>에 <너무 아쉬워하지 마>를, 들국화 데뷔 음반에 이병우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수록함으로써 대중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그들은 80년대 중반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를 연 일군의 뮤지션들(따로 또 같이, 들국화, 시인과 촌장 등) 중에서 막내격 이었다.
비록 80년대에 노래했던 그들이지만 통시적인 감성으로 어느 시대의 여린 젊은 가슴일지라도 울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어떤날의 노래들은 부드러우면서도 전율적이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바로 <하늘>, <그 날> 등이다. (박준흠)



4. 델리 스파이스 Deli Spice (1997/도레미레코드) (14) [김민규(g, v), 윤준호(b, v), 이승기(key), 오인록(d)] "
반항이다! 아니다!"의 '뻣뻣한 록 담론'으로부터 도망하고 싶어하는 모든 모던 로커들의 고민대로 그들은 자신의 음악을 '그냥 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은 어떻게 보면 아직 듣지 못한 이들에게 '선입견'을 만들어주는 위험한 행동이지만, 너무나도 이 앨범과 잘 어울리는 주장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이디엄으로부터 몇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그들의 음악관은 당연한 것이고, 또한 그러한 주장에 어울리는 트랙들을 선보이고 있는 점이 바로 그 증거물이 된다. 한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중요한 트랙 중의 하나인 <챠우챠우>만으로도 이 앨범의 가치는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연주력의 과시'도, '상업적인 안배에 의한 곡 구성'도 없는 이러한 앨범이 그렇게도 대중친화적인 용어인 '팝'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승리'다. '통신상의 공간'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다니는 그들이지만 앨범의 완성도는, 어쩌면 경멸적이거나 핸디캡일지도 모르는 그런 꼬리표를 어느 곳에 달아야 할지 궁금하게 만들어 버린다. (조원희)



5. 시인과 촌장 푸른 돛 (1986/서라벌레코드) (13) [하덕규(v, g, har), 함춘호(g)]
여린 듯하지만 날카로운 비수를 폐부 깊숙이 감춘 시인과 촌장의 목소리는 들국화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감성을 표출한 80년대 젊음의 뒤틀린 희망가였다. 시인과 촌장은 조동진을 수장으로 하는 70년대 모던 포크의 맥과 닿아 있지만 하덕규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 (손수 그린 파스텔화 앨범 재킷과 <얼음 무지개> 같은 곡에서 잘 드러나는)과 세상에 대한 치열한 시각(<매>, <비둘기 안녕>), 그리고 함춘호의 전통적이지 않은 기타 플레이 등으로 일반적인 시각의 포크 듀오의 이미지에서 멀리 벗어나 있던 이들이었다(이 시절 누가 <고양이>와 같은 곡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미 <푸른 돛> 이전에 <내 고향 동해바다>, <재회>(남궁옥분이 불렀던 그 곡) 등이 실린 앨범을 발표했던 하덕규는 함춘호와 짝을 이룬 이 앨범에서 '아무래도 친구 푸른돛을 올려야 할까봐 (<푸른 돛>)' 라고 나즈막히 얘기하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풍경>)'을 희망했다.
따스한 감성의 <사랑일기>와 <우리노래 전시회 1>에 실렸던 <비둘기에게>가 주로 알려졌지만 지독한 연가 <진달래>와 자아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담긴 <떠나가지 마 비둘기>, <비둘기 안녕> 등의 여운은 당시의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을 부여했다. (김민규)



6. 어떤날 2집 (1989/서울음반) (13) [조동익(b, key, pcc, v), 이병우(g, key, v)]
들국화 데뷔 앨범의 한 켠을 차지했던 <오후만 있던 일요일>과 우리노래 전시회의 <너무 아쉬워하지 마>는 당시의 상식을 벗어난 구성의 곡이었다. 굳이 클라이막스를 강조하지 않는, 그 흔하던 '뽕' 멜로디를 거세한 어떤날의 곡은 다분히 조동진의 영향력하에 놓인 가사 쓰기(국내에서 리리시즘을 이야기 한다면 이들을 빼놓을 수 없다)와 함께 당시 어느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의 것이었다.
소박했던 1986년의 데뷔 앨범 이후 3년만에 발표된 이 앨범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도입하여 보다 세련된, 그러나 여전히 도심 변두리 골목을 연상시키는 사운드의 곡들이 풍성하다. 조동익의 <초생달>, <하루>, <그런날에는>과 이병우의 <출발>, <취중독백>, <11월 그 저녁에> 등이 동등하게 실려 있지만 이 둘의 곡은 미묘한 차이를(정서적으로나 곡 구성으로나) 보인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조동익과 이병우는 나름의 길을 걸으며 솔로 뮤지션 세션, 프로듀서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던 장필순 4집과 한영애 4집은 조동익과 이병우가 각각 프로듀서한 앨범으로, 이를 통해 이들의 변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김민규)



7. 유재하 1집 (1987/서울음반) (13)
앨범 발표 직후 사고를 당해 단 한 장의 앨범이자 유고작이 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는 천재 뮤지션을 잃었다는 깊은 아쉬움을 남긴 앨범이다. 그는 천상에 있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지금까지도 후배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이는 유재하 추모앨범에 참여한 명단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지금의 '발라드' 진영의 발군의 주자들 모두는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유재하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거친 후 (조용필 7집 당시 조용필과 흡사한 목소리로 백보컬을 넣던 이가 바로 유재하였다) 원 맨 밴드나 다름없는 세션으로 발표한 이 앨범은, 클래시컬한 구성이 제공하는 매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가리워진 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맑은 정서가 주는 신선한 충격에 비할 바가 못된다. 베이스 라인과 피아노가 묘하게 엇갈리던 <우울한 편지>가 던져준 감동을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이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유재하의 곡으로는 <그대와 영원히>(이문세 3집, 문과철 1집), <비애>(한영애 2집)가 있다.] (김민규)




8. 봄 여름 가을 겨울 1집 (1988/서라벌레코드) (13) [김종진(g, v), 전태관(d)]
봄·여름·가을·겨울의 등장은 우리 음악의 범위를 넓힌 쾌거이다. 이들은 연주 음악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기교없이 기본을 지키는 연주가 오히려 더 어렵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진리를 깨우쳐주었으며, 보컬이 반드시 귀에 쏙 들어오는 목소리가 아니라도 좋은 멜로디와 진실한 가사만으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금 그들이 처한 음악적 정체의 위기는 초기의 이 소박하고 욕심없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알루미늄 케이스와 동영상 CD로 포장된 6집의 호화 재킷보다 첫 앨범의 소박한 재킷이 더 정감어리고, 이현도나 김세황, 이주노, 김현철, 이소라 등이 참여한 6집보다 오직 이 둘이 만들어낸 1집의 곡들이 더 많이 애창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모든 스타 음악인들 에게는 처음 시작할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라는 노래는 그들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그들은 알까? (신승렬)



9. 이상은 공무도하가 (1995/폴리그램) (12)
이상은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독특한 음악세계를 지닌 여성 아티스트다. 예전의 '가수'였던 그녀의 자격에 현재는 '음악감독'으로서의 자격이 훨씬 더 두드러진다. 그러한 그녀의 변신은 5집 <언젠가는>에서부터 본격화되었으며, 결국 이 앨범에서 꽃을 피웠다.
한국 대중음악사상 유례없는 실험성을 간직했으며, 토속적인 동시에 유려한 가사들과 이제는 '자신만의 것'이 되어 버린 듯한 독특한 멜로디라인이 매우 훌륭한 앨범이다. 특히 <새>에서의 사운드 응용은 이상은을 '스타일리스트'로 규정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대단한 음악감독'으로도 규정할 수 있게 한다.
그래도 누군가 이상은의 '전력'에 대해 물고 늘어진 다면 나는 그들에게 피치카토 파이브의 노미야 마키도 어린 시절 머리에 꽃핀을 꽃고 아무 생각 없는 댄스뮤직을 부르던 TV용 아이돌 스타의 일원이었으며, 여전사 커트니 러브조차 알렉스 콕스 감독의 기억에 따르면 '스타가 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는 드럭정키'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조원희)



10. 한대수 멀고 먼-길 (1974/신세계레코드) (12)
김민기가 한국 모던 포크의 신화라면 한대수는 개척자였다. 1968년 귀국하여 국내 음악활동을 시작한 이후 6년만에 내놓은 이 음반에는 그의 초기 대표곡들이 실려있다. <물 좀 주소!>에서 "물 좀 주소/물은 사랑이요", <바람과 나>에서 "야! 자유의 바람/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는 임", <행복의 나라>에서 "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더 느껴보자"를 외쳤던 그는 자유와 이상을 꿈꾸는 몽상가였다.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밥 딜런 정도의 위상을 획득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땅에서 그는 날개 꺾인 한 마리 날짐승이었다. 무한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당시 단연 빛나는 존재였지만 활동의 제한을 받는 뮤지션이었고, 어처구니없게도 이 데뷔 음반은 금지음반이 되었다.
정성조 쿼텟이 세션으로 참여하여 <바람과 나> 같은 곡에서는 당시 흔히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느낌의 세션을 들려주고 있고, 나중에 해금되어 정식으로 재발매된 음반에는 <하루 아침>의 오리지널 버전이 실려 있다. (박준흠)



11. 작은거인 <2집> 1981/오아시스 (12)
12. 부활 1986/서울음반 (12)
13. 김민기 <1집> 1971 (11)
14. 김현식 <3집> 1986/서라벌레코드 (11)
15. 김광석 <다시부르기 2> 1995/킹레코드 (10)
16. 동물원 <1집> 1988/서울음반 (10)
17. 듀스 1995/월드뮤직 (10)
18. 서태지와 아이들 <4집> 1995/반도음반 (10)
19. 시인과 촌장 <숲> 1988/서라벌레코드 (10)
20. 산울림 <2집> 1978/서라벌레코드 (9)

21. H2O <오늘 나는> 1993/로얄레코드 (9)
22. VARIOUS ARTISTS <우리노래전시회 1집> 1985/서라벌레코드 (9)
23. 신촌블루스 <1집> 1988/지구레코드 (9)
24. 동물원 <2집> 1988/서울음반 (9)
25. 서태지와 아이들 <1집> 1992/반도음반 (9)
26. 서태지와 아이들 <3집> 1994/반도음반 (9)
27. 김현철 <1집> 1989/서라벌레코드 (9)
28. 강산에 1992/킹레코드 (9)
29. 윤도현 밴드 <2집> 1997/다음기획/서울음반 (9)
30. 노이즈가든 1996/베이 (9)

31.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 1997/석기시대/킹레코드 (9)
32. 강산에 <나는 사춘기> 1994/킹레코드 (8)
33. 한영애 <바라본다> 1988/서라벌레코드 (8)
34. 시나위 1987/오아시스레코드 (8)
35. 신중현과 엽전들 <1집> 1974/지구레코드 (8)
36. 조동진 <1집> 1979/대도레코드 (8)
37. 서태지와 아이들 <2집> 1993/반도음반 (8)
38.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1984/서라벌레코드 (8)
39. VIRIOUS ARTISTS 1996/드럭 (8)
40. 이문세 <4집> 1987/서라벌레코드 (8)

41. 조용필 <1집> 1980/지구레코드 (8)
42. 낯선 사람들 <1집> 1993/하나뮤직/예원레코드 (8)
43. 따로 또 같이 <2집> 1984/대성음반 (8)
44. U & Me Blue 1996/송/LG미디어 (8)
45. U & Me Blue 1994/나이세스 (8)
46. 다섯 손가락 <1집> 1985/서울음반 (8)
47. 전인권·허성욱 <1979-1987추억들국화"머리에꽃을"> 1987/서라벌레코드(7)
48. 한영애 <불어오라 바람아> 1995/디지탈미디어 (7)
49. 장필순 <나의외로움이널부를때> 1997/킹레코드 (7)
50. 사랑과 평화 <1집> 1978/서라벌레코드 (7)

51. 김광석 <다시부르기1> 1993/킹레코드 (7)
52. 산울림 <3집> 1978/서라벌레코드 (7)
53. 동서남북 <1집> 1980/서라벌레코드 (7)
54. 듀스 1993/지구레코드 (7)
55. 시나위 <1집> 1986/서라벌레코드 (7)
56. 안치환 1993/킹레코드 (7)
57. 삐삐 롱 스타킹 <원웨이 티켓> 1997/동아기획 (7)
58. 이정선 <30대> 1985/한국음반 (6)
59. 김광석 <4집> 1994/킹레코드 (6)
60. VARIOUS ARTISTS 1997/서울음반 (6)

61. 삐삐 밴드 <문화혁명> 1995/송/디지털미디어 (6)
62. 조동익 <동경> 1994/킹레코드 (6)
63. 봄여름가을겨울 <나의아름다운노래가당신의마음을깨끗하게할수있다면>
1989/서라벌레코드 (6)
64. 마그마 <1집> 1981/힛트레코드 (6)
65. 김수철 <1집> 1983/신세계음향 (6)
66. 정태춘 <시인의 마을> 1978/서라벌레코드 (6)
67. 양희은 <1991> 1995/킹레코드 (6)
68. 달파란 <휘파람 별> 1988//펌프/도레미레코드 (6)
69. 패닉 1995/신촌뮤직/아세아레코드 (6)
70. 갱톨릭 1998/강아지문화예술 (6)

71. 카리스마 <1집> 1988/서라벌레코드 (5)
72. 한대수 <무한대> 1989/신세계음향 (5)
73. 안치환 <4집> 1995/킹레코드 (5)
74. 김현식 <5집> 1990/서라벌레코드 (5)
75. 11월 <1집> 1990/서울음반 (5)
76. 정태춘 <아!대한민국> 1993/삶의문화/한국음반 (5)
77. 전인권 <1집> 1988/서라벌레코드 (5)
78. 시나위 <4집> 1990/오아시스 (5)
79. 김광석 <2집> 1991/문화레코드 (5)
80.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손익분기점> 1997/동아기획 (5)

81. 한상원 1997/디지탈미디어 (5)
82. 조동익 1998/하나뮤직/킹레코드 (5)
83. 신촌블루스 <2집> 1989/서라벌레코드 (5)
84.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개, 럭키스타> 1998/펌프/디지탈미디어> (5)
85. 김수철 <황천길> 1989/서울음반 (5)
86. 허클베리 핀 <18일의 수요일> 1998/강아지문화예술 (5)
87. 이상은 <외롭고 웃긴 가게> 1997/킹레코드 (5)
88. 앤 1998/인디 (5)
89. 시나위 <5집> 1995/워너뮤직 (5)
90. H2O <2집> 1992/아세아레코드 (5)

91. 정태춘·박은옥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3/삶의문화/한국음반 (4)
92. 양희은 <1집> 1971/킹레코드 (4)
93.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 1990/지구레코드 (4)
94.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1989/서울음반 (4)
95. 정태춘·박은옥 <북한강에서> 1985/지구레코드 (4)
96. 김현식 <4집> 1988/서라벌레코드 (4)
97. 김현식 <2집> 1984/서라벌레코드 (4)
98. 신촌블루스 <3집> 1990/서라벌레코드 (4)
99. 윤도현 <1집> 1994/LG미디어 (4)
100. N.EX.T 1994/대영AV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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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랑각씨 : 우리음악의 명반들 2008-07-31 15:05:09 #

    ... 의 시도 이후로 우리 대중음악의 주요음반들을 재조명하는 작업들이 몇차례 있었다. 각씨가 알기로는 총 네차례의 비슷한 시도가 있었는데.. Sub 선정 한국 대중음반 100대 명반 (1998)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2006) 음악취향Y 한국대중음반 명반 100선 (2007) 가슴/경향신문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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